비디오아트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잡종의 예술
비디오아트가 생겨난지 불과 30여년, 미술세계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역사가 더 짧다. 그러나 그 미학을 기술하기가 어려운 것은 단지 역사가 짧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비디오아트가 그 전신격인 개념미술이나 퍼포먼스보다 현대의 기술문화에 더욱 가까이 밀착되어 있고 따라서 그 어느 장르보다도 '물질적' 기반에 의해 그 성격이 결정된다는 점 역시 그 어려움에 일조를 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가 낳은 컴퓨터 프로세싱 기법, 레이저 디스크의 보급, 인터엑티브적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전자공학적 기술 등 날로 세련되어가는 오늘날의 기술환경은 비디오아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테크놀로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기 쉽게 만든다. 실제로 초창기 비디오아트의 감상자들은 작품이 '못보던 신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우선 흥미를 느꼈다. 이런 점은 창작자들이나 비평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새로운 시대, 테크놀로지의 시대가 오고 있다'하는 것이 비디오아트의 상투적인 소개방식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비디오아트를 기술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단순한 시각은 많이 극복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비디오아트가 독자적인 미학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차원에서 그러한가, 또한 비디오아트에서 우리가 무엇을 감상하고 분석하고 비평할 것인가 하는 점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비디오아트에서 테크놀로지가 문제시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새로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현대의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현대의 인간과 기술의 상호관계는 무엇이며 비디오아트에서 그것은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이며, 그러한 부분은 단지 기술적인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차원을 떠난다고 했을 때에도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비디오아트는 단지 내용적인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는 무의미한 작품이 많을 뿐 아니라, 테크닉적인 차원에서 볼 때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비디오아트는 영화처럼 어떤 고유의 문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내러티브를 뚜렷하게 갖는 것도 아니다.
또 조형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비디오아트의 양태는 갤러리라는 울타리에 묶이기에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의 기록매체로서의 비디오, 모니터를 조형적 요소의 일부로 도입한 비디오 조각, 환경적이고 건축적인 요소를 도입한 비디오 환경-설치, 텔레비전이나 케이블에 방영될 목적으로 만든 대안매체로서의 정치적인 비디오테이프 등등...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비디오'라는 공통점을 가지며 비디오아트라는 이름 하에 묶인다. "'비디오아트'라는 용어는 비디오그라피적인 작품에만 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나왔지만, 실제에 있어서 이 말은 더 복잡한 영역을 포함한다. 오늘날 이 용어는 예술적 생산의 맥락에서 비디오 매체를 사용하는 모든 경우를 망라한다."
요컨대 비디오아트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잡종의 예술이며 통일된 기법적, 장르적 특성을 갖지 않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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